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생각하다..

존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들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이론적인

가상적 상황을 만들었다. 그것은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정보로 작용하는 다양한

환경의 조건 등의 개별적 속성을 알 수 없도록 하여 일정한 정의의 원칙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공정한 정의를 도출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목적을 가진 곳에서 무지의 베일을 쓰고라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곧 상대의 다양한 수준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말투에서 대화에서 피부색에서

옷차림.. 등에서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개념의 환경을 통해 상대의 지위를 느낄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시간 속에서 처음에는 ’동등하다‘ 생각하고 모여들고 만들어 지겠지만, 인격체들의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니 어려울 거라 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공정하기를 원해도 ’공정하다‘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성향과 계층 차별적 사회 구조에서 오는 비-공정성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은 평등한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의 공적인 세계에 들어가 협력의 공정한 조건을 제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합당함도 사람들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시 공정의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나누어진 사람 또는 그룹들이 또 다른 이름의 공정으로서 정의를 주장할 수 있거나,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어 그냥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는 그 행위가 그 조건이 공정할 수 있지만 너의 입장에서는 비-공정일 가능성들이 있음을 인식한다면 결국 무지의 베일이라는 방법을 통한 실행으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찾기

바라는 것은 모두가 아닌 일부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공공성의 시민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말이다

댓글 1개:

  1. 유토피아적인 생각이라 하겠지만, 또 그만큼 허무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만, 전 저라도 힘이 있다면, 올바른 세상을 향한 독재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이 변화하려면 일정 시간을 두고 사람들의 생각 속에 근본적인 이기의 문제와 왜곡된 소유욕의 뿌리부터 없애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기득권을 향한 일이라 반발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명한 지도자로써의 독재의 힘은 그 반발을 충분히 가시고도 남지 않을까 상상을 하곤 합니다.

    적어도 50년 이상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하는데... 걱정에 걱정만 쌓이고 있습니다. 내년 3월이 고비라는 말도 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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