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지금의 지구화는 한 차원 또 다른, 인간을 위한 대안인가?..

그 대안 속으로 모두가 꼭 들여가야 하는가?.

21세기.. 대부분의 나라와 많은 기업들은 세계화라는 시대적 메커니즘 속에 동참하여, 자국-자사의 정치 경제적 이익 논리에 따라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세계화라는 흐름을 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개인들.. 조직들.. 그 국가에 속해있거나 아닌, 그 기업에 속해있거나 아닌 다양한 속성을 가진 개인과 조직은 세계화 흐름을 어떻게 생각하며 받아들일까? 그것은 각각의 선택할 몫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 있을까?

 

근대후기를 지나 현대로 그리고 탈현대라고 말하는 세계화. 과학기술과 문명발전에 의해 개인과 조직은 선택할 수 있는 종류와 폭은 많아졌고 넓어진 것은 사실이고, 그로인해 경제적 발전,

생활의 편리와 보편적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공유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개인과 조직은 자신들의 인생이 풍요로워짐에 나름 만족해하며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 속에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어떠한 것을 선택 했을 때 선택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처럼 타인에게서 이 사회에게서 그 선택한 것에 대해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 말이다.

 

어떤 이가 정규학교에서 배우는 교과과정이 아닌 다른 곳,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받기를 선택한다면.. 영어는 안하고 소수민족 언어를 더 공부한다면.. 평범한 한국여성이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했다면.. 반대로, UN대사쯤 되는 서양남자와 결혼한 평범한 한국여성은.. 나아가..

한국이 한미FTA 협상을 결코 안했다면..  한국 백화점들이 해외명품들을 입점 시키지 않는다면..

언론이 중심부의 부정적 기사를, 주변부의 긍정적 기사를 자주 생산한다면..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며 경제적 이익에만 치중한다면..

그리고 이보다 더 총체적 영역에까지 개인과 조직은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인생내지는 사회경제적 입지는 국내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택의 문제역시 기술문명발달과 함께 전략적으로 정치화된 시스템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할 때는 이미 고도로 계산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우리는 평범함, 이성적인 자들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보편적 이성이 만든 왜곡된 인식일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자유가 분명히 있는데 자유가 없는 그래서 내가 원하는 자유도 이시대가 이상적으로 요구하는 바운더리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지유만 있을 뿐이다. 결국 개인과 조직의 선택의 자유도,

선택되어야하는 선택들만 가득하고, 이러한 시대는 자본력 기술력 정보력 등이 강한사람. 강한나라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나라들 간의 지배와 피지배 구조의 세계화인 것이다.

 

지배 측에 의한 자연파괴(멕시코를 중심으로 중남미 많은 나라 그 외 개도국에 자본을 대는

선진국들에 의해 공장설립과 원료채취 등에 의한 자연파괴와 노동력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어의 중요도와 사용이 각 나라의 고유한 언어문화를 조금씩 파괴하고, 달러의 파워

(물론 지난 2008년 말, 세계 금융위기로 기축통화의 의미와 중요도가 달라지고 있고..)

미국중심의 선진G7 (새로운 G20의 공조체제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국가들의

목소리가 들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 정체성의 문제로, 서구문화의 현지화로 인해, 현지문화의 정체성 파괴 (특히 청소년들의 자국문화인식을 떨어뜨리는 문제 들)등이 난무하는 한, 건강한 세계화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화’ ‘지구화’ 는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이 포함된 공동의 이익 (정신의 부분까지도)을 반드시 생각해야한다. 물론 많은 불편들이 있을 것이고, 비합리적이고 나이브한 생각이고 실행이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이성이 만들어 놓은 사회경제적인 기술합리성에 의해서만 인간의 가치체계를 재구성하여 왜곡한다면 어떻게 지구화에 지지할 수 있겠는가.

인류 공동의 각 문화와 정신을 인정하며 공존할 때, 좀 더 진정한 세계화가 될 거라 나는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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