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오빠는 필요없다' 한국의 페미니즘을 엿보다

오랫만에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며 정리를 해본다

그리고.. 한국사회 성별역활과 한국형 젠더의 정체성 개념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어본다

 

‘진보운동’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 운동권 가부장제는 어떻게 작동해왔나 -

 

조직의 ‘주부’가 되다

평등. 민주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는 운동사회에서도 구성원들의 역할이 위계적 성별분업에 입각해 할당되었다 -- 성별분업을 당연시하는 문화적 분위기와 성별분업을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는 조직구조 자체에 내포된 성별분업 존재에 주목해야한다.

 

가부장제 사회를 움직이는 커더란 축 -- 성별분업 체계는 특정기능(여성성.남성성)을 중심으로 전제하고 있다 : 조직 안에서 위계적 성별분업이 적극적 유도됨.

 

운동전 사회에 진입해 특정한 문화와 가치를 받아드리고 새로운 인간관계와 일상적 행위양식을 습득하는 입문과정에서 성별분업은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적극적으로 훈련되었다.

ex. 학생운동 안에서 선전 작업은 여성에게만 교육되는.. 성별화 된 훈련과정을 거쳐 체계적으로 ‘여성의 일’ 로 할당 : 처음부터 여자후배에게 선전을 가르치고 반대로 남자후배에게는 정치폭로물의 내용 쓰는 법 가르치는 식.

이렇듯 조직체계는 낡은 이데올로기 때문에 성별분업이 고착화 된다기보다는, 조직체계 자체가 기존의 성별분업을 재생산하고 유도하게끔 짜여져 있다.

 

직책이 위계적 성역할을 전제로 구성되고 신규진입자를 조직의 성별분업 체계에 편입시키는 문화적 과정이 작동하게 되면 여성은 누구의 ‘의도’ 없이도 조직의 주요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된다. 이렇게 초래되는 여성의 과소 대표성은 여성활동가들의 구조적 악순환을 가져오는 원인이며, 이것은 다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통로를 가로막고 조직 안에서 조직적으로 가부장성을 관철시킬 수 있는 조건으로 작동하게 된다.

 

ex. 1995. 한국노동연구원 발간(분기별 노동 동양분석) : 당시 여성위원장 노조는 전체 4.4% 에 불과. 2000. 전국 민주노총 산하 8개 연맹에서 여성간부 192명 9% & 남성간부 1957명 91%.

2007. 출범 12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수석부의원장 탄생. 

2000. 당시 참여연대. 경실련의 여성간부는 한두 명. 10% 이하.

 

90년대 초, 운동은 거대한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서 여성에게 수용될 권력은 별로 없었다.

ex. 운동하는 여대선배가 신적 존재로까지 느껴졌지만, 막상 사회운동 현장에서 진짜 별거아닌 일들을 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느껴진 당혹감. 좌절감 -- 중심부가 아닌 주변화의 위치확인.

권력의 우산밖에 있는 여성의 약한 주변성을 자각함

 

90년대 중반, 질적 양적으로 사회운동지형 조건이 변하면서 여성활동가의 비율과 이상이 높아지고 기존 ‘남성의 직책’ 으로 여겨지던 자리로 여성의 진출 시작. 그러나 진출속도는 매우 느렸고 여전히 사회운동단체 안에서의 성별분업은 크게 바꿔지지 않았다.

 

90년대 후반, 여성 간부급의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 그러나 여성의 간부화는 그 직책이 ‘여성화된 직무’ 로 변화되어졌다

ex. 남성간부의 전통적 사무국장 역할 : 조직의 전반적인 방향성과 정책내용에 관한 업무들.

여성간부의 여성화된 사무국장 역할 : 잡다한 사무관리가 업무에 당연히 포함 - 간부지만 여전히 조직 안에서 주부 역할.

 

“운동권이 망하니까 여자가 나온다?”

90년대 중반이후 학생운동의 여성화 진행시기 : 당시 학생운동의 위기라는 진단이 만성화되기 시작 -- 전통적 학생운동 세력 약회되고, 여성활동가들이 그동안 남성이 독점해온 자리에 진입시작.

 

ex. 1999. 연세大 총학생회선거에 여학생 출마. 최초 여성이 대학총학생장 당선 -- 대학사회뿐 아니라 언론의 관심과 사회적 주목. but 일부언론. 운동권이 망하니까 나온다.. 부정적 보도.

 

이러한 시각은 운동의 주체를 남성으로 전제하고 이러한 전제가 깨지는 상황을 운동의 위기로 인식하는 때문이고, 동시에 그런 위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비난의 초점이 되었다.

 

여성활동가들에게 일정한 지위와 대표성을 부여하면서도 그것이 너무 커지지 말아야 했던 시대 -- 책임자 자리에 있는 여성보다 복학한 남자선배의 실질적인 큰 영향력이 그 예이다. ex. 고학번의 남자선배의 지배가 관철되는 와중에 ‘꼭두각시’ 라는 느낌이 드는 남성 중심적 문화와 운동에 관한 역사들의 신화는 당시 여성대표자 위상과 발언권을 약화시켰다.

 

누가 저 컵을 씻을 것인가

1970년대 후반, 여성 배타적인 언더써클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진행되던 때, 남학생이 감옥가면 약혼자를 빙자한 옥바라지 -- 여학생이 할 수 있는 초고의 실천으로 여기던 분위기 -- 결혼한 여성활동가는 운동권 남편에 대한 ‘수발노동’을 기꺼이 수행 -- 운동가의 ‘아내노릇’, ‘형수노릇’을 통해 자신이 운동가라 여겼다.

 

1980년대, 남성의 양말, 속옷을 빨아주고, MT가면 기꺼이 밥을하며, 200포기 김장도 해주는 여성활동가를 칭찬하는 문화가 운동사회에 배타적 성별분업을 일상적으로 유지하게 하였다.

 

1990년대 중반,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 노동조합운동 안에서도 사무실에서 여성간부의 역할은 오피스와이프에 가까웠다. 이렇듯 여성적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운동가들은 자신의 일들이 과연 사회운동인지.. 회의하기 시작했다.

ex. 남성활동가가 원고를 쓰면 여성활동가는 그 원고(대자보)를 복사. 발송 등의 끊임없는 반복

 

컵 씻기로 대변되는 하찮은 노동의 형태

컵' 여자가 들어왔으니까 청결하겠지? vs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씻어야 한다는 생각

90년대 후반 성별분업에 대한 여성의 비판이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서 모두 가시화 되었다.

 

ex. “여기 커피 한잔! or 누나 라면 끓여줘!” 라는 말에 “너가 끓여먹어!” 라고 소리치면서 불친절한 여성. 짜증나는 여자선배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여성주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ex. 1999. 11월 ‘껍 깨기 행사’ 운동사회內 가부장성과 권위주의 철패를 위한 모임인 여성활동가모임 주체로, 여성에게 당연한 사적인 전제로 간과해온 ‘일상’을 첨예한 정치적 현상으로 문제화 시켰다.

 

노동자 군대 앞에 평화란 없다

1980년 군부독재의 억압통치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 지속되면서, 탄압에 저항하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은 매우 전투적이 되었다. 이러한 투쟁 형태를 ‘전투성’ 의 전형으로 규정하는 것은 -- 집회에 참여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신체 생물학적 약함으로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여성활동가들의 좌절이다 동시에 여성의 적극적 참여를 ‘깝죽대는’ 것으로 비판.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역시 ‘제대로 운동하지 못한다’ 는 자괴감을 갖게 만들었다.

 

80~90년대 초, 거리시위는 국가폭력과 대항폭력의 대립 속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여성을 ‘뒤처지는 존재’ 로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전투는 남성의 것임’을 전통적인 성역할은 별다른 비판 없이 수용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열등한 운동가이거나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가 된다.

 

키워주기’의 성차별과 남성 네트워크

근대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남성은 공적인 존재로, 여성은 남성에게 속한 사적인 존재로 정의된다. 남성적 문화에서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의 연대와 여성의 분열을 통해 작동한다.

 

성씨. 학연. 지연. 군대. 직장.. -- 공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연대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남성을 젠더로 보이지 않게 하는 성별정치학이 작동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같은 조건에서 여성하고는 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술자리 문화 -비공식적 위력)

 

인정받으려면 ‘여자냄새’를 지울 것

‘전경을 무장해제 시킨 경험’ ‘파출소를 뽀겐 경험’ 이 자랑스러운 무용담이 되는.. 경찰에 잡혀가서 구타를 당하고, 전과기록을 ‘경력’으로 간주하는 현상은 남성 중심적 인정체계 속에서 겪는 ‘의심받는 고통’ 과 ‘증명해야하는 노동’ 이다.

사회운동에 몸담은 여성활동가가 여전히 여자냄새가 남아있는 한, 제대로 운동하고 있지 않다는 비난이 계속되며 그로인해 운동가로서의 자존감을 갖기 어렵다.

 

욕울 배우고, 담배를 피우고, 거칠고, 논리적이고, 딱딱한 말투 중성적 옷차림 등을.. 익히기 시작하고 스스로도 남성화 되려고 최면을 건다.

남성에게 부여된 권력에 접근하기를 욕망하는 여성. 그래서 남성의 인정 속에서 승인 받고자하는

‘명예남성’ 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but. 여성활동가의 남성화 전략은 불가능한 적전이고 실패한다.

- 나는 여전히 여자. 그도 나를 여전히 여자로 인식.

 

운동의 ‘꽃’이 되다

통일의 꽃 - 임수정 / 민주주의 꽃 - 김귀정

“꽃 같은 우리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누가 막으려 한답니까?” KTX 남성간부가 한 말

효순아! 마선아! 주한미군 없는 세상! 통일 조국의 꽃으로 부활하라“ 한겨례 광고카피

 

여성은 민족적 정신적 강인성과 순수성을 상징하고, 고통을 통해 민족의 영광을 드러내는 민족담론의 기표로서 모순적으로 동원된다. 수동적인 희생자로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처지거나, 남성을 대리하는 강한 어머니로서 동질화 된 민족의 기호로 상징되어왔다.

 

ex. 기지촌 여성 살인사건 피해자에게 : ‘미국놈의 윤락녀’ 로 더럽게 취급되다가 사망 후, ‘순결한 민족의 누이’ ‘민족의 딸’ 이 되던 현상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오랜 침묵의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사회의 성폭력은 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보다,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 집안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여겨왔다. 기지촌여성 사건은 ‘미국이 한반도를 강간한 것’ 이라는 표현은 남성 중심적 인식 속에서 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2 개의 댓글:

  1. 언니 여성 공부 하시더니 ㅎㅎㅎ

    이번에 작성 하신 건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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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성활동가의 남성화되어 가는 것...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그것은 좀 아닌 것 같소만요...



    ㅎㅎ 예전에 학부시절에 페미니스트 교수님 수업들은 적있었는데 매일 ROTC 학생과 다투던 것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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