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소통정치.. 권력의 또 다른 이름 ?..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 의사를 소통한다는 것은 둘 이상의 구성원 사이에서 대화와 타협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 질. 표현 방법 능력 등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의 논리로 표현하고 동시에 상대의 의견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의사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가 일어나고 다시 합리적 의사 결정에 이르게 하는 것. 그리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면 현명한 판단과 논리적인 설득력, 협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또한 다른 사람의 지시나 요구에 좌지우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다양한 지식적 경험적 지적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상태에서 의사소통을 통한 민주적인 시민사회를 지향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통정치역시 지식층 중심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의사소통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또

하나의 권력정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부르조아가 부의 경제력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피지배계층이 따라오게 했던 것처럼 사회에서 능력 있는 지식층의 시각과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정치에 그렇지 못한 계층의 의사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반영될 수 있고 획득할 수 있는지, 지식의 힘을 가진 계층의 지배를 받아 저절로 따라가게 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결국 소통정치도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공존과 협력의 장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권력정치가 아닌 의사소통의 공론장이 공익적 가치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각자의 목적에 근거한 원활한 소통정치 역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과 집단의 권력이라 생각한다.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지금의 지구화는 한 차원 또 다른, 인간을 위한 대안인가?..

그 대안 속으로 모두가 꼭 들여가야 하는가?.

21세기.. 대부분의 나라와 많은 기업들은 세계화라는 시대적 메커니즘 속에 동참하여, 자국-자사의 정치 경제적 이익 논리에 따라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세계화라는 흐름을 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개인들.. 조직들.. 그 국가에 속해있거나 아닌, 그 기업에 속해있거나 아닌 다양한 속성을 가진 개인과 조직은 세계화 흐름을 어떻게 생각하며 받아들일까? 그것은 각각의 선택할 몫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 있을까?

 

근대후기를 지나 현대로 그리고 탈현대라고 말하는 세계화. 과학기술과 문명발전에 의해 개인과 조직은 선택할 수 있는 종류와 폭은 많아졌고 넓어진 것은 사실이고, 그로인해 경제적 발전,

생활의 편리와 보편적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공유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개인과 조직은 자신들의 인생이 풍요로워짐에 나름 만족해하며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 속에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어떠한 것을 선택 했을 때 선택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처럼 타인에게서 이 사회에게서 그 선택한 것에 대해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 말이다.

 

어떤 이가 정규학교에서 배우는 교과과정이 아닌 다른 곳,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받기를 선택한다면.. 영어는 안하고 소수민족 언어를 더 공부한다면.. 평범한 한국여성이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했다면.. 반대로, UN대사쯤 되는 서양남자와 결혼한 평범한 한국여성은.. 나아가..

한국이 한미FTA 협상을 결코 안했다면..  한국 백화점들이 해외명품들을 입점 시키지 않는다면..

언론이 중심부의 부정적 기사를, 주변부의 긍정적 기사를 자주 생산한다면..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며 경제적 이익에만 치중한다면..

그리고 이보다 더 총체적 영역에까지 개인과 조직은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인생내지는 사회경제적 입지는 국내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택의 문제역시 기술문명발달과 함께 전략적으로 정치화된 시스템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할 때는 이미 고도로 계산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우리는 평범함, 이성적인 자들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보편적 이성이 만든 왜곡된 인식일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자유가 분명히 있는데 자유가 없는 그래서 내가 원하는 자유도 이시대가 이상적으로 요구하는 바운더리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지유만 있을 뿐이다. 결국 개인과 조직의 선택의 자유도,

선택되어야하는 선택들만 가득하고, 이러한 시대는 자본력 기술력 정보력 등이 강한사람. 강한나라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나라들 간의 지배와 피지배 구조의 세계화인 것이다.

 

지배 측에 의한 자연파괴(멕시코를 중심으로 중남미 많은 나라 그 외 개도국에 자본을 대는

선진국들에 의해 공장설립과 원료채취 등에 의한 자연파괴와 노동력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어의 중요도와 사용이 각 나라의 고유한 언어문화를 조금씩 파괴하고, 달러의 파워

(물론 지난 2008년 말, 세계 금융위기로 기축통화의 의미와 중요도가 달라지고 있고..)

미국중심의 선진G7 (새로운 G20의 공조체제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국가들의

목소리가 들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 정체성의 문제로, 서구문화의 현지화로 인해, 현지문화의 정체성 파괴 (특히 청소년들의 자국문화인식을 떨어뜨리는 문제 들)등이 난무하는 한, 건강한 세계화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화’ ‘지구화’ 는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이 포함된 공동의 이익 (정신의 부분까지도)을 반드시 생각해야한다. 물론 많은 불편들이 있을 것이고, 비합리적이고 나이브한 생각이고 실행이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이성이 만들어 놓은 사회경제적인 기술합리성에 의해서만 인간의 가치체계를 재구성하여 왜곡한다면 어떻게 지구화에 지지할 수 있겠는가.

인류 공동의 각 문화와 정신을 인정하며 공존할 때, 좀 더 진정한 세계화가 될 거라 나는 생각 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생각하다..

존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들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이론적인

가상적 상황을 만들었다. 그것은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정보로 작용하는 다양한

환경의 조건 등의 개별적 속성을 알 수 없도록 하여 일정한 정의의 원칙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공정한 정의를 도출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목적을 가진 곳에서 무지의 베일을 쓰고라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곧 상대의 다양한 수준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말투에서 대화에서 피부색에서

옷차림.. 등에서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개념의 환경을 통해 상대의 지위를 느낄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시간 속에서 처음에는 ’동등하다‘ 생각하고 모여들고 만들어 지겠지만, 인격체들의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니 어려울 거라 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공정하기를 원해도 ’공정하다‘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성향과 계층 차별적 사회 구조에서 오는 비-공정성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은 평등한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의 공적인 세계에 들어가 협력의 공정한 조건을 제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합당함도 사람들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시 공정의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나누어진 사람 또는 그룹들이 또 다른 이름의 공정으로서 정의를 주장할 수 있거나,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어 그냥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는 그 행위가 그 조건이 공정할 수 있지만 너의 입장에서는 비-공정일 가능성들이 있음을 인식한다면 결국 무지의 베일이라는 방법을 통한 실행으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찾기

바라는 것은 모두가 아닌 일부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공공성의 시민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말이다

내가 추구하는 PR의 가치

현대사회에서 PR활동은 대부분 이윤을 위한 실용적 영역에 치중되어있다.

 

이렇듯 PR의 기능을 지배적 성향의 가치추구나 사익사업에 주된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PR이 바리새인적 명성과 물질만능주의 형성에 앞장서는 느낌이 드는 실용학문으로 취급당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PR의 기능이 사람과 조직에게 경제적 이익과 명성을 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많고 큰 PR대행사 중에 공익을 위한 PR대행사, 공익적 가치를 위해 모이는 고급

 

두뇌들과 재정 스폰서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것이다.

 

 

PR은 돈을 벌어주는 공신이다. PR은 사람과 조직 나아가 국가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주는

 

공신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정말 중요한 것.. PR은 생명의 가치를 알리고 사람을 살리는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능을 넘어서는 강력한 공익의 힘을 가지고 있는..

 

공신 중에 공신이라 믿는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나의 PR가치를 정의해본다.

 

PR의 정기능을 공익을 위해 잘 활용한다면, 오히려 공익PR을 통해서도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말이다.

 

 

한 사회의 건강한 경제적 가치는 돈에 의한 부로 판단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적 자본을 이야기할 때처럼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인격 그리고

 

공공선을 위한 실행력은 중요한 사회적자본의 요소라 생각한다.

 

 

PR의 상업적 기능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공익 PR활동을 통해 창출될 멋진 공적 가치들을

 

기대해본다.

나의.. 공익PR기획사 'PR Com'

현대사회는 사적이익을 중요시 하는 시대이지만, 동시에 더불어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근대후기 이후, 급속히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어 변질되어가는 지구의 자연 그리고 사람들이

 

추구하게 된 경제적 이득과 더불어 강해지는 이기심과 개인주의는 사람이 자연을..

 

사람이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자신까지 황폐케 만들어 가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조금씩 이라도 자연과 사람 모두 건강한 삶에 대하여 진정한 고민과 성찰

 

그리고 변화를 위한 실행이 있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우리의 기업들이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영역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NGO단체들도 이제는 제 3 섹터인 CSO에서 PR의 중요을 인식하고, 전문화된 서비스를

 

요청하될 시대라고 생각한다. 예로 대정부 관계와 로비, 지역사회나 NGO, NPO등

 

비영리기관과의 관계 구축한 이슈관리와 기금조성, 내부직원관계, 여론 선도자 관리,

 

국내 기업의 해외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글로벌PR이 진행되는 것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

 

다.

 

어찌되었든 공익 차원의 폭넓은 NGO 사업과 가치를 알리는 홍보에 대한 연구와 분석은 계속

 

이루어져야 하겠고, 그러한 것들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들은 계속 개발되고 시도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PR이 가진 깊은 잠재력의 발휘는, 새로운 미디어와 사회 환경에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들로 사람들과 조직들로 하여금 공익을 위한 PR회사들의 필요성을 인식

 

하는 패러다임으로 가는, PR의 효과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재차 언급하자면

 

특히, NGO들이 전문적인 홍보 시스템에 대한 가치와 필요를 반드시 인식하고 어렵더라도

 

그들의 좋은 사업을 제대로 잘 알림으로써 그들의 선한 목표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업의 성공여부가 PR실행만 잘 한다고 이루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좋은

 

가치를 가진 컨텐츠가 있어도 체계적인 PR전략과 실행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많음을 알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가 그리며 상상하는..

 

공익을 위한 홍보대행사 PRcom의 성공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란 것도 않다.

 

여러조건이 모두 열악한 상태에서 오직 내 속에 있는 조심스런 열정만 있는..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세상의 PR대행사들처럼 어떻게 하면, PRcom이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고,

 

감동의 힘을 발산할 수 있는지 있는지..  그리고 사업으로도 발전할 수 있을지..

 

 

그 가슴 뛰는 기분 좋은 일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물론 꿈이 상상으로만 끝날지..

 

현실로 나타날지는 더 살아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계란으로 계속 얻어맞은 바위 표면은 걸죽한

 

흰자와 노른자로 범벅이 되듯.. 그 계란들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며 말이다.